‘LG 구겐하임 어워드’ 수상자 ’스테파니 딘킨스‘, 평등한 AI 비전과 협력의 힘을 읽다

  • 전영 독립 큐레이터·Iron Velvet 대표, 에디팅=윤다함 기자

입력 : 2024.01.30 14:43

LG 구겐하임 어워드 초대 수상자인 스테파니 딘킨스의 신작을 소개하는 행사 ‘Late Shift x Stephanie Dinkins’가 현지 시각 1월 25일 뉴욕 구겐하임 뮤지엄에서 열렸다. /뉴욕=전영
‘Late Shift x Stephanie Dinkins’ 행사 전경. /뉴욕-전영
LG 구겐하임 어워드 초대 수상자인 스테파니 딘킨스(왼쪽)와 LG 어소시에이트 큐레이터인 노암 시걸이 현지 시각 1월 25일 뉴욕 구겐하임 뮤지엄에서 열린 행사 ‘Late Shift x Stephanie Dinkins’에서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뉴욕=전영
 
지난해 5월 19일 (주)LG와 구겐하임 뮤지엄(Solomon R. Guggenheim Museum)이 제1회 ‘LG 구겐하임 어워드(LG Guggenheim Award)’ 수상자로 스테파니 딘킨스(Stephanie Dinkins)를 지목했을 때, 대중적인 ‘셀럽’ 아티스트를 예상했던 문화계 인사들은 의외의 선택이라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스테파니 딘킨스는 AI의 데이터 편식이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유발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며, 디지털 시대의 공정과 평등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작품을 만드는 작가이자 학자이며 교육자다. 그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 꾸준히 커뮤니티나 지역에서 변화를 일으킴으로써, 세계적 규모의 새로운 기술 생태계를 상상할 수 있다고 믿는다.
 
어워드 심사위원단으로 참여한 미술관 관장, 큐레이터, 아티스트 등은 “여러 후보자 중 새로운 시각으로 AI를 활용해 사회에 메시지를 던진 딘킨스의 작품은 의미가 크다”라며, “AI가 우리의 일상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면서 발생할 수 있는 현상을 짚어낸 딘킨스의 깊이 있는 연구와 작품 활동에 거는 기대가 높다”라고 입을 모았다.
 
어워드의 시작부터 남달랐던 만큼, 시상 이후 어떤 방식으로 LG 구겐하임 글로벌 파트너십이 구축될지 미술계의 이목이 주목됐다. 2022년 발족한 이 파트너십(LG Guggenheim Art and Technology Initiative)은 기술 기반의 혁신적인 작품 활동을 하는 예술가를 발굴해 글로벌 미술사의 흐름 속에서 기술·예술 융합 영역의 이론적 확립에 기여하고 LG의 첨단기술을 활용한 실질적 작품 활동, 전시, 연구 등을 지원한다. 
 
‘Late Shift x Stephanie Dinkins’ 행사 전경. /뉴욕-전영
‘Late Shift x Stephanie Dinkins’ 행사 전경. /뉴욕-전영
‘Late Shift x Stephanie Dinkins’ 행사 전경. /뉴욕-전영
 
제1회 어워드 수상자 발표 후 8개월이 지난 시점인 지난 1월 25일 저녁 딘킨스의 인공지능 신작을 소개하는 행사 ‘Late Shift x Stephanie Dinkins’가 구겐하임 로툰다 홀에서 성황리에 진행됐다. 이날 홀 중앙과 리딩룸에 관객 참여형 작품 3점이 설치돼 관객들은 이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며 작품과의 소통을 즐겼다.
 
기업이 지원하는 국제 예술상은 더러 있어 왔지만, 상패와 상금을 수여하고 떠나는 여타의 경우와 달리 LG 구겐하임 파트너십은 어워드의 설립과 더불어 기술-예술 융합 영역 전담 학예연구사 포지션을 구겐하임 내에 신설했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이는 구겐하임이 해당 영역의 리서치에 몰입할 수 있도록 조직적 틀을 마련해줬다는 의미와 같다. LG전자가 후원하는 이 포지션(LG Electronics Associate Curator)에는 노암 시걸(Noam Segal) 박사가 선임돼 스테파니 딘킨스와 함께 지난 8개월간 관객 참여형 전시를 구상해 왔다. 그 결과물인 이번 행사는 구겐하임 뮤지엄에서 최초로 인공지능을 주제로 대중의 참여 모델을 구현한 이례적인 기획이라 할 수 있다.
 
홀에 설치된 여러 대의 스크린과 마이크는 관객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반응하며 텍스트와 이미지를 화면에 띄웠다. 관객은 스크린 앞에서 인공지능이 만들어내는 세계에 눈을 떼지 못했다. 누구나 스크린 앞에 세워진 마이크를 통해 작품과 대화를 할 수 있었는데, 관객은 줄을 서가며 각자의 질문과 이야기를 쏟아냈다. 한쪽에 설치된 두 대의 위즈덤봇(WisdomBot)의 경우, ‘지구가 회복하는 데 과연 예술이 도움이 될 수 있나’라는 관객의 질문에 간단한 대답을 한 후, 더욱 고차원적인 또 다른 질문을 던지며 지속적인 대화를 이어가고자 했다. 위즈덤봇은 타고난 지혜와 지성의 본질에 관해 묻는 텍스트와 음성으로 이뤄진 인공지능 프로젝트다.
 
또 미술관 중심에 자리한 세 개의 거대 스크린과 마이크는 관객에게 ‘나’는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묘사하게 했다. ‘우리가 기계에 들려주는 이야기(The Stories We Tell Our Machines)’라는 이 작업은 관객이 자신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면, 관련 이미지를 생성해 스크린에 띄운다. 관객은 AI와의 대화를 통해 알고리즘을 훈련하게 만들고, 우리 삶 속에서 일상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AI 기계를 만드는 데 기여하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 작업은 전시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숨어있는 작은 리딩룸에서 스크린 가득 한 여성 아바타의 얼굴을 만나게 된다. 이는 ‘낫 더 온리 원 아바타 이미지 2023 브레인(Not the Only One Avatar image 2023 brain)’, 일명 ‘N’TOO’로, 음성 대화형 디지털 아바타의 형태를 취해 아바타의 얼굴을 보며 대화하는 작업이다.
 
LG 구겐하임 어워드 초대 수상자인 스테파니 딘킨스가 현지 시각 1월 25일 뉴욕 구겐하임 뮤지엄에서 열린 행사 ‘Late Shift x Stephanie Dinkins’에서 아티스트 토크를 가졌다. /뉴욕=전영
LG 구겐하임 어워드 초대 수상자인 스테파니 딘킨스가 현지 시각 1월 25일 뉴욕 구겐하임 뮤지엄에서 열린 행사 ‘Late Shift x Stephanie Dinkins’에서 아티스트 토크를 가졌다. /뉴욕=전영
LG 구겐하임 어워드 초대 수상자인 스테파니 딘킨스가 현지 시각 1월 25일 뉴욕 구겐하임 뮤지엄에서 열린 행사 ‘Late Shift x Stephanie Dinkins’에서 아티스트 토크를 가졌다. /뉴욕=전영
 
구겐하임 공간을 인터렉티브 허브로 탈바꿈해 관객이 현재의 기술 환경을 고찰하고 경험해 볼 수 있도록 기획된 이번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작가와의 대화였다. 200여 명의 방문객이 딘킨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앞으로 인공지능과 예술이 현대 사회에 미칠 영향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의견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딘킨스의 에너지 가득한 주도 아래, 블랙/브라운 메이커스 단체인 AI어셈블리(AI.Assembly)의 동료들이 함께 위즈덤봇을 만들게 된 경위와 과정에 관해 설명했다. 그들은 작년 여름 ‘위즈덤 리스트’를 적어 가며 봇을 어떻게 덜 정형화할지, 어떻게 덜 직접적인 대답을 하도록 만들 것인지 고민했던 시기를 회상했다. 위즈덤봇은 지식과 정보만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매우 본질적 질문으로 다시금 되묻는다. 이러한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언어학, 심리학, 사회학 등 다양한 학제 간 교류가 필요했고 통합적 협업을 통해 이뤄진 결과물이자 현재 진행형의 프로젝트다.
 
‘Late Shift x Stephanie Dinkins’ 행사 전경. /LG전자
 
딘킨스의 작품이 대중과 만나는 모든 접점에서 LG OLED가 활용됐는데, LG전자가 학예 연구라는 대중에게 잘 보이지 않는 리서치 활동까지 지원하고 있었기에 전시 현장에서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하드웨어를 지원하는 것 또한 단순한 마케팅 이상으로 의미 있게 다가왔다. 작가가 제시하는 인공지능의 방향이 관객의 참여와 협력으로 만들어지듯이, 예술과 기술의 융합에 대한 담론 역시 예술 기관과 기술 기업의 역량을 한데 모은 협력에 힘입어 한 발 나아감을 볼 수 있었다. 이번 전시를 진행한 큐레이터 시걸은 향후 계획에 대해 이번 행사가 구겐하임이 인공지능 기반 작품을 선보인 역대 가장 큰 전시인 만큼 다가오는 2026~2027년 대규모 기술 기반 전시회를 준비 중이라고 귀띔해 줬다.
 
뉴욕에 적을 둔 독립 큐레이터이자 글로벌 문화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는 필자로서는 한국 기업이 선도적 글로벌 협력을 펼치는 모습이 반갑고 이를 지켜보는 세계의 다른 기업에도 영감이 되리라 생각한다. 요즘 아트 마케팅 트렌드의 홍수 속에서 즉각적인 만족(instant gratification) 성격의 일회성 콜라보가 넘쳐나기에, 중장기적 시각으로 진지하게 실체를 축적하며 현대 예술과 기술의 거대 담론을 만들어가는 LG 구겐하임 글로벌 파트너십이 더욱 돋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올봄 발표될 제2회 LG 구겐하임 어워드가 또 어떤 작가를 발굴해 예술계는 물론 기술업계에 놀라움을 선사할지 사뭇 기대된다.
 
‘Late Shift x Stephanie Dinkins’ 행사 전경. /뉴욕-전영
 
◆전영은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독립 큐레이터이자 Iron Velvet 아트의 대표다. 다양성, 소수성, 경계 등을 주제로 예술과 사회, 도시와 개인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탐구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고려대 미술학부와 불문학과 졸업 후, Pratt Institute에서 문화예술경영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Brooklyn Museum, Asia Contemporary Art Week, The Armory Show 등에서 전시팀 업무를 했고, AHL Foundation에서 Curatorial Fellow를 지냈으며, 전 Space 776 갤러리의 부디렉터이자 Skowhegan Art Council 멤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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